밤 하늘을 올려다보면 무수히 많은 별들이 반짝이고 있다. 은하계만 하더라도 1000억 개의 항성이 있다고 일컬어진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은 그들 항성이나 행성, 그리고 태양이 지구를 중심으로 돌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지식으로서 당연하게 알고 있다. 그러나 밤 하늘에 있는 별의 움직임을 눈으로 본 대로 이해하고자 하면, 그들은 지구를 중심으로 천구를 에워싸고 있는 것같이도 보인다. 실제로 16세기에 지동설이 탄생하기까지는 그렇게 믿어져 왔다.
현대에도 직감적으로 ‘천동설’ 쪽이 이해하기 쉬운 것은 변함없을 것이다. 2004년 9월 발표된 일본의 설문 조사 결과가 그것을 말해 준다. 일본 국립천문대 천문정보공개센터의 아카타 히데히코 조교수는 초등학생에게 지구와 태양의 관계에 관하여 질문하였다. “지구는 태양 둘레를 돌고 있다”(지동설)인가, “태양은 지구 둘레를 돌고 있다”(천동설)인가를 초등학교 4∼6학년생 348명에게 양자 택일로 물어 본 결과, 42%를 웃도는 147명이 “태양은 지구 둘레를 돌고 있다”고 대답하였다. 일본의 현행 학습 지도 요령에서는 지구의 공전 및 자전에 관하여는 중학교에서 학습하게 되어 있다.
40%의 초등학생이 천동설적인 우주관을 지니고 있다는 것은 일본 국내의 뉴스에서도 크게 보도되었다. 그러나 “지구가 태양의 둘레를 돌고 있다는 증거를 대라.”고 하면 독자는 자신 있게 답할 수 있을까? “우주 공간에서 바라본다”고 하는 것은 옳은 답이 아니다. ‘행성의 역행’이라고 생각한 사람은 애석하다. 이에 관하여는 나중에 설명하도로 하고, 먼전 인류의 우주관에 관한 변천을 대략적으로 더듬어 본다.
코페르니쿠스가 주장한 지동설의 우주체계를 나타낸 회화. 중심에서 빛나 고 있는 것이 태양이다. 태양의 둘레를 돌고 있는 것은 안쪽에서부터 수성 , 금성, 지구, 화성, 목성, 토성이다. 가장 바깥쪽에는 항성의 천구가 그려져 있다. 지구의 둘레를 돌고 있는 것은 달이다. 코페르니쿠스가 지동설을 주 장하기까지는 우주의 중심은 지구라고 하였으며, 지구의 둘레를 태양과 달 , 그 밖의 행성이 돌고 있다고 생각한 천동설이 믿어져 왔다. |
본격적인 우주관은 고대 그리스에서 탄생하였다
우주관이라는 것은 각 민족에 따라 다양하다. 예를 들면 약 5000년 전 고대 인도의 우주관은 몸을 서린 큰 뱀 위에 서양개가 타고 있으며, 다시 그 서양개 위에 올라탄 3마리의 코끼리가 반구상의 지구를 떠받치고 있다고 생각하였다. 민족마다 다양한 우주관이 만들어져 가던 중 관측을 근거로 한 인류 최초의 본격적인 우주관은 고대 그리스에서 탄생하였다고 한다.
날마다 태양과 달은 동쪽에서 떠올라 서쪽으로 진다. 밤 하늘의 별도 마찬가지이다. 이 현상을 그대로 이해하면 이들 천체가 지구를 중심으로 날마다 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차라리 자연스럽다. 고대 그리스에서도 역시 우주의 중심에 지구가 있으며, 지구 둘레를 태양과 달, 그 외에 별이 돌고 있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그 초기에는 지구가 자전하고 있다는 생각조차 없는 시대도 있었다. 천체의 일주 운동은 실제로는 지구의 자전에 의하여 일어나고 있지만, 초기에는 천구가 하루에 1회전한다고 생각하였던 것이다.
천체의 관측이 더욱 상세하게 이루어지게 되자 어떤 난제가 제기되었다. 밤 하늘에 있는 대부분의 별이 계절에 따라 그 장소를 규칙적으로 변화시키는데 대하여, 몇몇 별은 그 규칙을 따르지 않고, 때로는 반대가 되는 움직임(역행)마저 보이는 것이 알려진 것이다. 이 움직임은 지구 둘레를 천체가 단순한 원운동을 하면서 돈다고 하는 모델로는 제대로 설명할 수 없다. 그 후 ‘행성’이라 이름 붙여진 이들 ‘변덕스러운’ 천체가 고대의 천문학자들을 괴롭혔다.
천동설은 ‘주전원’으로 행성의 움직임을 설명
고대 그리스를 대표하는 천문학자로서 2세기 초 무렵의 프톨레마이오스(생몰년 미상)가 꼽힌다. 프톨레마이오스는 그리스 천문학의 연구 성과를 집대성하여, 나중에 ‘알마게스트’라 부르게 되는 책을 썼다. ‘알마게스트’는 천동설의 가장 권위 있는 책이라고들 한다.
행성의 복잡한 움직임을 설명하기 위하여 프톨레마이오스의 천동설에는 주전원이라는 보조적인 원 궤도가 도입되어 있다. 지구를 중심으로 한 원은 ‘도원’이라 하였다. 주전원이란 그 중심이 도원 위에 존재하는 것처럼 설정한 원이다. 프톨레마이오스에 의하면, 지구를 중심으로 원을 그리는 것은 행성 그 자체가 아니라 주전원의 중심이다. 행성이 주전원 위를 일정 속도로 돌면서 주전원의 중심도 도원 위를 돌고 있다고 생각하였던 것이다. 태양 이외의 항성에 관하여는 천구에 고정되어 움직이지 않는다고 하였다. 이 생각에 의하면, 도원과 주전원의 회전 비율을 조정할 경우 행성의 역행도 무척 정확하게 설명할 수 있었다.
프톨레마이오스 시대에 이르러 천체의 일주 운동을 지구 자전에 의하여 설명하는 것은 이미 일반적이었으나, 어디까지나 우주의 중심은 지구라고 생각되었다. 프톨레마이오스의 천동설은 복잡하였으나, 행성의 움직임을 상세히 설명할 수 있었기 때문에 이후 1400년에 걸쳐 인류의 우주관을 계속 지배하게 되었다.
천동설의 약점
프톨레마이오스의 천동설은 행성의 움직임을 제대로 설명할 수 있었지만, 그것은 관측 결과에 맞추기 위해 주전원이라는 개념을 ‘억지로’ 도입한 결과이다. 즉 행성이 왜 주전원을 그리는가 하는 것은 문제 삼지 않고 계산상으로 만들어 낸 우주관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제 와서 행성의 공전 궤도는 엄밀하게 말해 타원을 그리고 있다는 것이 알려져 있지만, 당시는 알고 있었을 리가 없다. ‘원은 가장 완전한 도형’이라고 생각하였던 고대 그리스인이 만든 천동설에는 타원 궤도가 들어설 여지가 없었다. 타원 궤도를 그리는 행성의 움직임을 원의조합만으로 설명하는 것은 상당한 무리가 뒤따르는 작업이었던 것이다.
실제로 행성 관측의 정확도가 높아질 때마다 천동설은 미세한 수정을 거쳤다. 이론과 실제의 관측 사이에 차이가 발견되면 새로운 주전원을 차례로 보완해 나감으로써 대응하였다.
왼쪽은 행성이 역행이 일어나는 구조이다. 지구는 화성보다 안쪽을 돌고 있 으며, 지구 쪽이 공전 주기가 짧다. 지구가 호성을 앞지를 때 화성이 천구에 대하여 거꾸로 돌아오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이 같은 행성의 움직임을 설 명하기 위해 프톨레마이오스는 ‘주전원’을 도입하였다. 오른쪽은 프톨레마이 오스가 주장한 천동설의 우주 모습이다. 지구를 중심으로 태양과 달, 행성, 그 밖의 항성이 돌고 있다고 생각하였다. 프톨레마이오스에 의하면 행성은 주전원 위를 돌면서 지구 둘레를 돈다. 주전원의 중심이 그리는 궤도가 도원 이다. 이설에 따르면 행성의 궤도는 녹색의 선과 같이 되고, 행성의 역행을 설명할 수 있다고 한다. 당시 행성은 토성까지만 발견되어 있었다. |
“미세한 차이를 수정하기 위해 주전원 위에 다시 작은 주전원을 덧붙일 필요가 생기는 등 천동설은 복잡하기 그지없는 것이 되었다. 최종적으로 70개 이상의 주전원이 덧붙여졌던 것 같다.”고 일본 국립천문대 와타나베 준이치 조교수는 말한다.
천동설에는 그 밖에도 약점이 있었다. 수성과 목성이 저녁과 새벽에만 보이는 것은 당시부터 알려져 있었다. 천동설에서는 이 이유를 “지구의 주위를 일주하는 주기가 수성 ․ 금성 ․ 태양이 같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였다. 수성과 금성은 항상 태양 가까이 있어, 태양에서 멀어질 때만 관측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나아가 화성의 겉보기 밝기가 크게 변화하는 것도 수수께끼였다. 2003년 8월 화성이 6만 년 만에 ‘대접근’을 하여 화제가 되었던 것처럼 화성은 2년 2개월 간격으로 접근하여 밝게 빛난다. 밝기의 변화는 최대 약 40배나 된다. 화성이 지구를 중심으로 돈다는 천동설에서는 비록 주전원을 도입하더라도 이만한 변화는 설명하기 어려운 것이다.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이 탄생하다
오래도록 믿어져 왔던 천동설에 이론을 제기한 것이 니콜라우스 코페르니쿠스(1473∼1543)이다. 복잡한 천동설에 의문을 품은 코페르니쿠스는 단순 명쾌한 지동설에 어렵게 도달하였다. 우주의 중심에 태양이 있으며, 행성은 태양을 중심으로 안쪽에서부터 수성, 금성, 지구, 화성, 목성, 토성의 순으로 원 궤도를 그린다는 것이다. 가장 바깥쪽에는 부동의 항성 천구가 있다고 하였다.
이렇다면 행성의 역행을 설명하는 데 주전원은 필요 없다. 예를 들어 화성의 경우라면, 지구가 화성을 안쪽에서 ‘앞지를’ 때 역행이 일어나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수성과 금성이 해질 무렵과 해 뜰 무렵에만 보이는 것은 2개의 행성이 지구 안쪽(태양 방향)에 있기 때문이다. 화성의 겉보기 밝기의 변화에 대해서도, 지구가 화성을 앞지를 때 양자가 가장 접근하여 밝게 보이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납득할 수 있다.
그러나 코페르니쿠스는 지동설을 발표하는 데 신중하였다. 당시의 그리스도교회 사회에서는 신이 창조한 대지가 움직이고 있다는 주장은 허용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코페르니쿠스보다도 뒤에 지동설을 강경하게 부르짖은 조르다노 브루노(1548∼1600)는 화형에 처해졌다. 지동설을 옹호하는 책을 출판한 갈릴레오 갈릴레이(1564∼1642)는 교회의 노여움을 사서 종교 재판에 의하여 유폐되기도 하였다. 천동설인가 지동설인가는 당시의 그리스도교 사회에서는 그만큼 중요한 것이었다.
천동설과 지동설은 종이 한 장 차이
그 만큼 큰 문제였던 천동설과 지동설이지만, 사실은 2가지 설은 종이 한 장 차이에 지나지 않는다는 견해도 가능하다. 프톨레마이오스의 천동설에서는 행성의 움직임을 설명하기 위하여 주전원과 도원을 도입하였다. 실은 이 때 주전원과 도원의 반지름 비와 회전 속도의 비까지 변화시키지 않으면, 2개의 원은 어떠한 크기의 원으로도 그릴 수 있다. 이것은 상사 도형의 성질로 설명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지구에서 행성의 주전원 중심까지의 거리(도원의 반지름)를 2배로 하면 주전원의 반지름도 마찬가지로 2배로 하면 될 것이다. 이때 주전원과 도원의 회전 속도비를 변화시키지 않으면 지구에서 본 행성의 겉보기 운동은 전혀 변화하지 않는다.
프톨레마이오스의 천동설에서는 수성과 금성, 태양은 같은 주기로 지구 둘레를 일주한다고 정해졌던 것을 상기하기 바란다. 조금 전에 말한 상사 도형의 성질을 이용하여, 수성과 금성의 도원 반지름을 늘여 태양의 궤도 반지름과 일치시킨다면 과연 어떻게 될까? 2개 행성의 주전원 중심은 태양과 겹쳐, 태양을 중심으로 돌고 있는 셈이 되는 것이다.
실제로 정밀한 천체 관측을 한 것으로 알려진 티코 브라헤(1546∼1601)는 그와 같은 우주관을 주장하였다. 우주 중심은 어디까지나 지구이지만, 수성과 금성, 화성, 목성, 토성의 각 행성은 태양을 중심으로 돌고 있다. 태양은 이들 행성을 거느리면서 지구를 중심으로 돌고 있는 것이라고 하였다. 말하자면 천동설과 지동설의 절충안이다.
여기에서 만약 한 걸음 나아가 태양의 움직임을 멈추고, 그것과 마찬가지 효과가 나타나도록 좌표를 변화하여 지구를 움직이면,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과 같은 것이 된다. 고대의 프톨레마이오스 자신도 이것을 알아차렸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지구가 움직이고 있는 것이라면 항상 강한 바람이 불고 있어야 할 것’ 등으로 생각하여 지구가 움직이고 있음을 부정하였다.
지동설은 방증이 쌓여 받아들여졌다
화형에 처해진 조르다노 브루노의 예로도 알 수 있듯이, 그리스도교를 부정하게 되는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은 일부 지식인을 제외하고는 좀체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리고 이론상 미비한 점도 있었다. 타원 궤도가 도입되지 않았기 때문에 관측 결과와 어긋남이 있었던 것이다. 오히려 주전원을 사용하여 수정하였던 천동설 쪽이 정밀도가 높았다는 이야기도 있다.
그 후 행성이 타원궤도를 그리고 있는 것을 요하네스 케플러(1571∼1630)가 발견하고, 갈릴레이는 망원경을 개발하여 금성이 차고 이지러지는 것을 확인하였다. 또한 아이작 뉴턴(1642∼1727)은 운동의 3법칙을 마무리하여 천체의 운동 법칙을 물리적 해명하였다. 이들은 모두 지동설의 방증이 되며, 방증이 쌓여 지동설은 차츰 널리 받아들여졌다. 에드먼드 헬리(1656∼1742)가 핼리 혜성의 궤도를 지동설에 근거하여 계산하고 있는 것 등을 보면, 적어도 그 시대에는 지동설이 받아들여졌으리라고 생각된다.
지동설의 증거 ‘연주 광행차’, ‘연주 시차’
그렇다면 지구가 움직이고 있는 것을 보여주는 직접적인 증거는 없을 것일까? 와타나베 조교수는 “지동설을 직접 증명하는 증거의 대표적인 것으로 연주 광행차, 연주 시차를 들 수 있다.”고 설명한다.
연주 광행차나 연주 시차는 지구의 공전에 의하여 항성의 겉보기 위치가 어긋나는 현상이다. 연주 광행차는 비가 내리는 각도를 전차 안에서 관찰하는 경우에 비유된다. 즉 전차가 멈추고 있을 때 비가 수직으로 내리고 있다 하더라도, 전차가 달리기 시작하면 비가 앞쪽에서 비스듬히 내리는 것처럼 보인다. 마찬가지로 지구의 공전에 의하여 항성에서 오는 빛의 방향이 어긋나는 것이다. 연주 광행차는 1728년 처음으로 확인되었으며, 그 어긋남의 크기는 최대 약 20.5초각(1초각은 3600분의 1°)이었다.
연주 시차란 지구에 가까운 위치에 있는 항성의 겉보기 위치 사이의 크기를 말한다. 지구의 공전에 따라 가까운 별은 먼별에 비하여 겉보기의 위치가 크게 어긋난다. 마찬가지의 현상은 유원지에서 상하로 원운동을 하는 놀이 기구를 타고 바로 앞의 경치와 먼 곳의 경치를 비교함으로써 체험할 수 있다. 먼 곳의 경치는 거의 움직이지 않는 데 비하여, 바로 앞의 경치는 크게 움직인다. 실제의 하늘에서는 가까운 별이라도 지구의 공전 반지름에 대한 별까지의 거리가 매우 멀기 때문에 연주 시차는 거의 생기지 않는다. 4.4광년으로 지구에서 가장 가까운 켄타우르스 자리 알파별에서 조차 시차의 크기는 0.742초각이다. 이 때문에 연주 시차의 확인은 1838년까지 기다리지 않으면 안 되었다.
이들 지동설의 증거를 확인할 수 있었을 무렵에는 이미 지동설은 받아들여져 있었다. 그러나 천동설파와 지동설파가 논전을 되풀이하던 시대에는 연주 시차를 둘러싸고 큰 논쟁이 있었다. “일찍부터 지동설의 증거로서 관측이 시도되었을 터이지만, 관측 기기에 한계가 있었으므로 제대로 확인되지 않았다. 그 때문에 천동설파가 지동설을 부정하기 위한 재료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았다.”(와타나베 조교수)
지구가 움직이고 있다는 증거의 하나인 ‘연주 광행차’가 관측되는 구조를 나타 낸 그림. 광행차는 전차의 승객이 바라보는 비 내리는 모습에 비유된다. 비가 수직으로 내리고 있어도, 전차가 달리고 있으면 승객에게는 비가 비스듬히 앞 방향에서 내리는 것처럼 보인다. 이것을 지구와 항성의 관계에서 생각하면 지 구가 그림의 뒤쪽(1)에 있을 때는 항성으로부터의 빛이 왼쪽(지구의 역행 방향) 으로 어긋나 보인다. 반대로 지구가 그림의 앞쪽(2)에 있을 대는 항성으로부터 의 빛은 오른쪽으로 어긋난다. 지구의 공전 속도는 초속 약 30킬로 미터이다. 빛의 속도(초속 약 30만 킬로미터)에 대하여 무시할 수 없는 크기이므로 이 같은 현상을 관측할 수 있다. |
우주의 이해는 어디까지 진전할 것인가?
연주 광행차, 연주 시차가 확인됨으로써 지구가 움직이고 있다는 의미에서는 지동설이 확고 부동한 것이 되었다. 그러나 그후의 과학의 태양이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로 얻었던 ‘우주의 중심’이라는 지위를 태양으로부터 빼앗아 버렸다. 태양계가 있는 은하계마저도 우주의 중심이 아니고, 태양은 아주 흔한 항성 가운데 하나에 지나지 않게 된 것이다.
지동설이 그러하듯이, 이런 우주 모습을 우리들이 실감하고 이해하기란 어렵다. 그러나 인류는 천문학과 우주론을 진보시켜 왔다. 인류가 알고 있는 것은 여전히 한정되어 있다. 과연 우주의 이해는 어디까지 진전할 것인가?
(출처 : 월간 과학 Newton 2004년 12월호 기사)